고국에서 보내온 글

천주교원주교구의 사회복지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160201.jpg 천주교원주교구 사회복지 역사는 1973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원주교구는 13개 본당을 관할했는데 원주와 영월, 삼척 등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었고, 대부분 산간어촌과 탄광촌 등 가난한 근로자들과 영세 소농이 많은 중소도시를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교통여건이 좋지 않고 산간오지의 열악한 환경으로 문화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 안에서 사회복지의 필요성이 점차 대두되고 있을 즈음, 1972년 남한강 일대에 내린 집중 폭우로 원주교구 내 9개 시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교구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만큼 당시 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님은 세계 각국의 가톨릭 구호기관에 호소하여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고 이에 ‘서독주교단’과 ‘국제 카리타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결성된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출범(1973년 1월)이 원주교구 사회복지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이후 농어촌과 광산지역의 노동자들과 구체적인 만남을 시작으로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등 빈곤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농민들의 계몽운동은 물론 교육활동부터 생산까지 참여하며 발로 뛰고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소외된 이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습니다. ‘사회복지’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이미 사회복지 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 밑거름으로 10년 후 1983년 교구에 ‘사회사업국’이 신설되고 그 이듬해 사회복지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지금의 원주교구는 48개 본당에 교구 산하 복지시설 기관이 67개로 30년 전보다 몇 배 성장했지만 지금까지도 서울지역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초창기 어려웠던 시절 최기식 신부님께서 해외로 서울로 다니시면서 후원자를 모집하여 오늘의 원주교구 사회복지 발전에 초석을 놓았지만 홀로 설 수 있는 역량은 아직 부족합니다. 지역특성상 도시보다는 산간오지와 농어촌이 대부분이기에 그만큼 복지의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이지요.

매월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후원회원들을 위한 감사미사가 봉헌됩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원주교구이지만 후원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편견과 차별이 없는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복지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Message Date: 02-01-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