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보내온 글

흑빛 합창단의 하모니

서승남 (흑빛 지역아동센터장)
170302.jpg “행복한 세상 사랑의 노래가 우리 마음속에 있어요... 꽃피고 새들 노래하는 길 우리 함께 걸어요~” 흑빛 공부방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노랫소리. 순수하고 꾸밈없는 소리에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문화예술 불모지나 다름없는 산동네에서 음악과 악기를 배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학교 음악수업은 짧은 데다 악기 같은 경우 맛보기로 끝날 때가 많아 친구들은 늘 아쉬워했지요. 이러한 척박한 탄광촌 작은 골짜기에 음악을 알려주신 은인들이 있습니다.

첫 인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성악을 전공하신 임재철 교수님이 고한 성당에서 주최한 ‘작은 음악회’에 재능기부를 하러 오신 것으로 시작됩니다. 교수님은 주변을 둘러보아도 높은 산밖에 보이지 않는 삭막한 고한에서 똘망한 눈으로 음악회를 경청하고 있던 아이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는데요. 그 때 당시 계셨던 신부님께 독일 유학이 끝나면 꼭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하고 가셨답니다. 10년 후, 제자인 양현애 선생님과 다시 찾아왔을 때는 성당의 신부님도 공부방 장소도 카지노가 생긴 고한의 모습도 많이 바뀌어서 놀라셨다고 합니다. 더욱 놀랐던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열악한 교육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게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2010년 여름의 어느날, 당시 주임신부님이셨던 이진희 신부님과 저는 불쑥 찾아온 두 분으로부터 ‘약속’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얼떨떨한 마음이었지만 마침 저희는 아이들의 예술 감수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었고, 약속을 지키러 먼 곳을 와주신 두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음악학교’를 진행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었지요.

그 다음 해인 2012년 7월, 1기 음악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임교수님은 재능기부를 할 제자들과 함께 다시 찾아주셨고, 저희는 근처의 성당에서 키보드, 플롯, 바이올린 등 악기를 빌려와 악기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대망의 첫 합창. 초, 중등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한데 어우러질까 기대 반, 염려 반 시작했던 합창이 5일간의 캠프가 끝나자 멋진 하모니로 연주되었습니다. 부모님과 지역주민을 모신 발표회에서 보여드린 합창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흑빛 합창단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탄광촌 고한 골짜기를 명품 도시로 거듭나게 할 날을 기대해 봅니다.

Message Date: 03-02-2017